[삼성전자]역시 ㅡ돈번사람만 부담없이 읽어라
작성일 24-09-2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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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よしき 조회 23회 댓글 0건본문
미국 망명 친척 있으면 부자 되는 아이러니
이에 따라 쿠바가 2011년 소규모 자영업을 허용하면서 미국 등에 초기 창업비용을 보내줄 가족, 친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게다가 상당수 쿠바 내 소규모 자영업체는 실제 주인이 해외 거주 쿠바인인 경우가 상당하다. 자영업 개설 허가를 받은 ‘서류상 주인’은 쿠바인이지만 돈을 투자한 실제 주인은 해외 거주 쿠바인인 경우가 많다. 거의 50% 이상으로 추정한다. 돈을 빌려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쿠바는 공산혁명 이후 모든 것이 국영이 됐다. 카스트로 정권과 미국과의 갈등도 공산 정부가 쿠바 내 미국 민간 기업의 자산을 무상 몰수하고 국영화하면서 발생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일부 소규모 자영업에 국한됐지만 이렇게 다시 민영화가 이뤄지면서 사실상 미국의 자본으로 창업이 열풍을 이루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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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혁명을 이끈 피델 카스트로를 배출한 아바나 대학 법과대학 건물,
사회주의 체제 고장 나면 고쳐야
피델 카스트로 정부가 이렇게 한 가장 큰 이유는 사회주의 체제로는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가 고용이다. 2008년 형인 피델 카스트로부터 국가평의회 의장 자리를 물려받은 라울 카스트로는 나라 공무원과 국영 기업의 인력 활용 상황을 조사했다. 상황은 심각했다. 예로 10명이면 충분한 일터에 30명 이상이 근무하고 있었다. 무상교육으로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그냥 아무 직장에나 배치한 것이다. 그래야 수치상 실업률이 낮아지고 사회주의 국가의 이상인 완전 고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완전 고용이 아니라 과잉 고용이었다. 일자리는 월급만 받는 게 아니라 미래 발전도 보장해야 하는데, 이런 식의 과잉 고용은 자리 배치에 불과했다. 8시간의 근무시간 동안 자리에 멍하니 앉아만 있다가 퇴근하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효율은 고사하고 직장에서 앉아있을 자리조차 없는 경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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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한 호텔 벽에 걸린 체 게바라의 사진 '어느 혁명가의 초상'(오른쪽)과 게릴라 시절 모습.
공직·국영기업 근무 450만 중 150만 놀아
국가와 공기업이 고용한 인력 중 450만 명 중 100만 명 이상이 과잉 인력으로 나타났다. 당시 정부와 공기업 고용 인력 450만 명 중 거의 최소 100만, 최대 150만 명이 불필요한 인력으로 분석됐다. 쿠바 정부는 나라 경제의 회생을 위해 자영업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쿠바의 사례는 공무원과 공기업 고용 증가를 통해 실업률을 낮추려는 노력이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형식적으로는 2008년 국가평의회 의장에 올랐던 라울 카스트로가 이런 개혁을 주도했다. 하지만 막후에서 정책을 좌우했던 피델 카스트로의 허가를 받지 않고 라울이 2011년 이런 조처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쿠바인들은 믿고 있다. 피델은 자신이 구축했던 고전적인 공산 체제가 이렇게 서서히 변화하는 것을 목격하고 세상을 떠났다.
북한, 쿠바에 경제개혁 벤치마킹 와야
소련식 중앙 계획경제를 고집해온 북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북한이 소련 원조로 잘나가던 시절 그곳에서 공부도 하도 근무도 했다. 어떤 식의 개혁이 국민에게 그나마 숨통을 열어줄 수 있는지를 보려면 쿠바에 오기를 권한다. 또 하나. 쿠바는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을 통제하지 않는다. 외국과의 전화 통화도 막지 않는다. 외국의 뉴스와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인터넷도 비용이 비싸서 그렇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쿠바 공산당이 체제 유지에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자신감은 개혁이 성공하고 경제가 계속 잘 돌아가는 덕분에 가능하다. 쿠바의 눈으로 북한은 살펴보면 흥미로운 것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쿠바에 매료된 400만 외국 관광객
쿠바는 2016년 400만 명의 외국인이 찾았다. 수많은 사람이 쿠바를 사랑했던 두 사람의 외국인에 매료돼 그들의 흔적을 찾아 쿠바를 방문한다. 그중 한 명이 체 게바라다. ‘어느 혁명가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불리는 그의 멋진 사진은 수많은 티셔츠와 기념품에 새겨져 혁명의 역사와 낭만을 되새김질하게 한다. 하지만 쿠바에서 혁명은 낭만도 이상도 아니라 현실의 생활을 좌우한다. 그런 쿠바에서 게바라는 5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역사 속의 인물일 뿐이다.
이에 따라 쿠바가 2011년 소규모 자영업을 허용하면서 미국 등에 초기 창업비용을 보내줄 가족, 친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게다가 상당수 쿠바 내 소규모 자영업체는 실제 주인이 해외 거주 쿠바인인 경우가 상당하다. 자영업 개설 허가를 받은 ‘서류상 주인’은 쿠바인이지만 돈을 투자한 실제 주인은 해외 거주 쿠바인인 경우가 많다. 거의 50% 이상으로 추정한다. 돈을 빌려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쿠바는 공산혁명 이후 모든 것이 국영이 됐다. 카스트로 정권과 미국과의 갈등도 공산 정부가 쿠바 내 미국 민간 기업의 자산을 무상 몰수하고 국영화하면서 발생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일부 소규모 자영업에 국한됐지만 이렇게 다시 민영화가 이뤄지면서 사실상 미국의 자본으로 창업이 열풍을 이루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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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혁명을 이끈 피델 카스트로를 배출한 아바나 대학 법과대학 건물,
사회주의 체제 고장 나면 고쳐야
피델 카스트로 정부가 이렇게 한 가장 큰 이유는 사회주의 체제로는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가 고용이다. 2008년 형인 피델 카스트로부터 국가평의회 의장 자리를 물려받은 라울 카스트로는 나라 공무원과 국영 기업의 인력 활용 상황을 조사했다. 상황은 심각했다. 예로 10명이면 충분한 일터에 30명 이상이 근무하고 있었다. 무상교육으로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그냥 아무 직장에나 배치한 것이다. 그래야 수치상 실업률이 낮아지고 사회주의 국가의 이상인 완전 고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완전 고용이 아니라 과잉 고용이었다. 일자리는 월급만 받는 게 아니라 미래 발전도 보장해야 하는데, 이런 식의 과잉 고용은 자리 배치에 불과했다. 8시간의 근무시간 동안 자리에 멍하니 앉아만 있다가 퇴근하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효율은 고사하고 직장에서 앉아있을 자리조차 없는 경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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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한 호텔 벽에 걸린 체 게바라의 사진 '어느 혁명가의 초상'(오른쪽)과 게릴라 시절 모습.
공직·국영기업 근무 450만 중 150만 놀아
국가와 공기업이 고용한 인력 중 450만 명 중 100만 명 이상이 과잉 인력으로 나타났다. 당시 정부와 공기업 고용 인력 450만 명 중 거의 최소 100만, 최대 150만 명이 불필요한 인력으로 분석됐다. 쿠바 정부는 나라 경제의 회생을 위해 자영업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쿠바의 사례는 공무원과 공기업 고용 증가를 통해 실업률을 낮추려는 노력이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형식적으로는 2008년 국가평의회 의장에 올랐던 라울 카스트로가 이런 개혁을 주도했다. 하지만 막후에서 정책을 좌우했던 피델 카스트로의 허가를 받지 않고 라울이 2011년 이런 조처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쿠바인들은 믿고 있다. 피델은 자신이 구축했던 고전적인 공산 체제가 이렇게 서서히 변화하는 것을 목격하고 세상을 떠났다.
북한, 쿠바에 경제개혁 벤치마킹 와야
소련식 중앙 계획경제를 고집해온 북한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북한이 소련 원조로 잘나가던 시절 그곳에서 공부도 하도 근무도 했다. 어떤 식의 개혁이 국민에게 그나마 숨통을 열어줄 수 있는지를 보려면 쿠바에 오기를 권한다. 또 하나. 쿠바는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을 통제하지 않는다. 외국과의 전화 통화도 막지 않는다. 외국의 뉴스와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인터넷도 비용이 비싸서 그렇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쿠바 공산당이 체제 유지에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자신감은 개혁이 성공하고 경제가 계속 잘 돌아가는 덕분에 가능하다. 쿠바의 눈으로 북한은 살펴보면 흥미로운 것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쿠바에 매료된 400만 외국 관광객
쿠바는 2016년 400만 명의 외국인이 찾았다. 수많은 사람이 쿠바를 사랑했던 두 사람의 외국인에 매료돼 그들의 흔적을 찾아 쿠바를 방문한다. 그중 한 명이 체 게바라다. ‘어느 혁명가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불리는 그의 멋진 사진은 수많은 티셔츠와 기념품에 새겨져 혁명의 역사와 낭만을 되새김질하게 한다. 하지만 쿠바에서 혁명은 낭만도 이상도 아니라 현실의 생활을 좌우한다. 그런 쿠바에서 게바라는 5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역사 속의 인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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