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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I][정보글] 순흥안씨[順興安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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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よしき 댓글 0건 조회 18회 작성일 23-09-1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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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요약 경상북도 영주시(榮州市)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2000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수 46만 8827명, 가구수 14만 5254가구로, 안씨의 73.5%를 차지한다.

-- 귀찮으면 위에 두줄만 읽어도 됨--


시조는 자미(子美)로 그의 세 아들 영유(永儒)·영린(永麟)·영화(永和)를 파조로 하는 추밀공파(樞密公派;1파)·별장공파(別將公派;2파)·교서공파(校書公派;3파)의 세 분파로 대별된다. 안씨의 역사상 대표적 인물이며 주자학(朱子學)의 태두인 향(珦)은 추밀공파인 영유의 손자이다. 그는 고려 원종 때 문과에 급제,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을 역임했는데 중국에서 서적을 도입하여 후진을 양성하는 등 유학(儒學)의 진흥에 힘썼다.

향의 아들 우기(于器)는 찬성(贊成)을 지냈고, 손자 목(牧)은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냈다. 향의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는데, 조선시대의 주요인물로는 침(琛)·당(瑭)과위(瑋)·현(玹)·상(瑺) 3형제가 있다. 침은 세조 때 문과에 급제한 뒤 전라도관찰사·한성부윤·대사헌·경상도 병마절도사 등을 지내고 공조판서를 거쳐 지돈령부사에 이르렀으며, 그의 아들 5형제도 모두 현달하였다. 당은 성종 때 친시문과에 급제한 뒤 중종 때 형조·공조·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좌의정을 지냈으나, 1521년 신사무옥(辛巳誣獄)에 연루되어 아들 처겸(處謙)이 처형당할 때 사사(賜死)되었다.

위는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찬수하고 호조판서·형조판서를 지냈으며, 군략가로 이름이 높았다. 현은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한 뒤 명종 때 이조판서·우의정·좌의정을 역임했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상은 음악에 조예가 깊어 선조 때 거문고·비파·장고의 악보를 망라하여 《금합자보(琴合字譜)》를 발간하였다.

교서공파에서는 고려 말의 명신 축(軸)·보(輔)·즙(輯)의 3형제가 유명하다. 축은 충숙왕 때 원(元)나라 제과(制科)에 급제,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고, 충목왕 때 첨의찬성사·춘추관감사(春秋館監事)가 되어 충렬·충선·충숙왕조의 실록을 편찬하였다. 보는 공민왕 때 정당문학, 즙은 대제학을 지냈는데, 3형제 중 축의 후손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축의 아들 종원(宗源)은 조선 개국 후 삼사영사(三司領事)에 오르고, 종원의 아들 경공(景恭)은 조선 개국공신으로 태종 때 집현전 대제학이 되었다. 경공의 아들 순(純)과 손자 숭선(崇善)·숭효(崇孝)도 모두 명신으로 유명하며, 숭선의 현손으로 자유(自裕)·명세(名世) 등이 뛰어난 인물들이다.

근세인물로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한 의사 중근(重根), 선천(宣川)에서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총독을 암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명근(明根:중근의 사촌동생), 독립운동가이며 교육가인 창호(昌浩) 등이 있다.




보아하니 439도 순흥안씨임이 틀림없다 그러니 여기 ㅊ죽치고있지 ~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3-09-12 12:51:20 주식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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