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트럼프--아차하면 참수작전과 평양침공작전 단추만 누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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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よしき 댓글 0건 조회 15회 작성일 24-09-21 12:48본문
북한은 계측장비와 낙하지점에서의 분석선단을 이용해 화성-15형을 정확하게 분석한 결과를 밝혔어야 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지난해 11월 북한이 재진입 기술을 완성하려면 3~6개월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6개월의 시점은 올해 5월이다. 북한은 이 6개월의 기간 안에 사력을 다해 미사일을 완성해야 한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하라고 압박하면서 5월 데드라인에 맞춰 정상회담을 수락한 것이다. 북한이 가진 핵·미사일이 아직 완성품이 아니므로 그 가치는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9일 정부 성명을 통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것은 핵무기를 가지려는 국가가 그 목적을 달성할 능력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선언은 핵 무력의 기술적 완결 입구에서 내놓은 정치적 선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북한은 핵보유국 행보를 내딛고 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국가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면서 “그 어떤 핵 위협도 봉쇄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됐다”고 자평했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고 자신했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3월 10일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했다. 이 신문은 “분단의 주범인 미국이 일삼아온 북침전쟁 소동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는 평화 담판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배경에 대해 “그동안 트럼프는 조선에 대한 군사 행동의 가능성을 내비쳐왔으나 실제로는 무력 충돌을 피하고 핵보유국 조선과 대화를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하는 바람에 미국이 대화를 미룰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조선신보의 글은 하루 만에 전문이 삭제됐다.
뮌헨 신드롬
1939년 9월 29일 아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독일에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 지방을 넘겨준다는 내용을 담은 뮌헨협정문을 들고 왔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가 서명한 뮌헨협정문을 놓고 “영광스러운 평화”라고 치켜올렸다. 이에 대해 윈스턴 처칠은 “나치의 폭력 위협에 굴복한 것” “이리떼에게 작은 고기 한 덩어리를 던져주고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착각”이라고 했다.
독일은 뮌헨협정 체결 이듬해 3월 체코의 나머지를 병합했고 4월 폴란드를 침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체임벌린의 이 오판은 유화정책의 한계를 뜻하는 ‘뮌헨 신드롬’으로 불린다.
몇몇 안보 전문가는 이번 대북 특사단의 합의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뮌헨 신드롬을 상기시킨다. 독재자와의 협상엔 이런 위험이 늘 수반되기 때문이다. 체임벌린은 문서라도 들고 왔지만 이번 남북 합의엔 문서조차 없다. 북한 당국이나 언론 매체는 합의가 나온 지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록 합의 내용에 대해 확인해주지 않았다. 한국은 김정은의 말만 믿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개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수락하도록 했다. 잘되면 노벨평화상감이다. 그러나 BBC의 말대로 잘못되면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도 더 깊은 벼랑 끝으로 몰릴 것이다. 필자는 이 점이 우려된다.
사실, 김정은의 급반전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북한은 과거 중요한 합의를 자주 어겼다. 1972년 체결된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가 휴지조각이 됐다. 1991년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도 헌신짝처럼 취급됐다. 1994년 제1차 핵 위기를 타결한 제네바 합의도 파기됐다. 2005년 6자회담의 결실로 나온 9·19 공동성명도 이후의 핵실험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이후 2·13 합의와 10·3 합의는 구체적으로 핵시설을 표시하고 봉인하고 신고하고 폐기하고 검증하기로 했다. 2008년 6월 북한은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그러나 이런 합의와 폭파도 쇼로 끝났다.
북한은 원론에 합의한 뒤 각론에서 시비를 붙는 공산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협상 수법을 써왔다. 2012년 미국과 북한은 북한의 영유아를 지원하는 2·29합의를 도출했다. 이후 북한은 두 달도 안 돼 장거리미사일을 쐈다. 이렇게 북한과 체결한 모든 합의는 결국 무산됐다. 국제법상 조약의 성격을 갖는 정전(停戰)협정도 하루아침에 백지화하는 북한이다. 북한의 합의 파기 역사는 너무나 찬란하다. 이번 합의를 파기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특사단에 따르면, 김정은은 비핵화를 이야기하면서 ‘군사위협 해소’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것은 북한이 반복해 주장한 말이다. ‘어떻게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고 체제의 안전을 보장할 것인가’에 대해 북한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대목이 지뢰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지금 북한은 내부 사정상 핵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북한은 2012년 개정헌법에서 ‘핵보유국’이라 칭했고, 2013년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에 대한 법’이라는 이른바 ‘핵보유법’을 제정했다. 북한 주민들 뇌리에 박히도록 핵 보유를 선전해왔는데, 갑자기 핵을 버리겠다고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 매체들은 정상회담 합의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핵 무력은 정의의 보검” “100년이 지나도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유화책은 늘 시간 벌기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번에도 그랬을 정황이 있다. 지난해 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2대 전략 방향이 채택됐다. ‘핵보유를 어떻게 기정사실화하느냐’ ‘제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라는 것이었다. 제재를 무력화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평화 국면으로 전환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어려울 때마다 한국을 이용했다. 1990년대에 소련이 붕괴해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태도를 바꿔 남북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했다. 이후 고난의 행군을 무사히 넘겼다. 현재까지 유엔 안보리가 통과시킨 대북제재 결의안이 11개에 달한다. 무지막지하게 포괄적이고 광범위하다. 이 제재가 북한 목에 턱턱 차올라서 북한은 궁지에 몰린 것으로 보인다.
“3사단 소속으로 한국 왔다”
2월 16일 동중국해에서 북한 선적 유조선과 소형 선박이 유류 밀거래를 하는 장면. [일본 방위성]
이런 점에 비춰보면, 특사단의 발표도 중요하지만 북한이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핵 폐기 행동을 보일 때 겨우 믿을 정도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수용했음에도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3월 9일 “미국은 북한에 최대 압박을 이어갈 것이고, 북한이 비핵화 의지와 일치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회담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현재 북한과 협상 단계에 있지 않다”며 “미국은 북한이 약속한 사항을 지킨다는 전제하에 북한의 대화 요청에 응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예정해놓았다 하더라도 미국의 대북 압박은 지속되고 있다. 전쟁도 불사하는 징후가 이완되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 2사단에 근무하다가 지난해 여름에 미국 본토로 전속 간 미군 부사관인 A씨는 1년도 안 된 지난 3월 첫째 주 한국으로 돌아왔다. ‘신동아’ 3월호에 ‘이번엔 가족을 동반하지 못하고 혼자 한국에 오게 됐다’는 그 A씨다. 필자는 최근 A씨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는 “미 2사단이 아니고 3사단 소속으로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필자가 확인해보니, 미 육군 3사단 소속 부대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온 것은 사실이다. 미국 조지아주의 포트 스튜어트 기지에 주둔한 미 육군 제3사단 제1여단이 9개월간 한국에 순환배치된 것이다. 이는 미국 AP가 1월 13일 미국 조지아주의 미 육군 탱크여단이 한국에 순환 배치된다고 보도한 점과도 부합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한미군 하면 미 2사단을 떠올리는데, 지상전을 주로 맡는 3사단이 한국에 온 것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통상 9개월 미만으로 순환 배치되는 부대(Rotation Unit)는 가족 동반이 금지된다. 그래서 주한미군인 A씨는 이번에 가족 동반 없이 혼자 한국에 왔다. 신규 배치 주한미군 가족 동반 금지 논란과 관련해, 9개월 미만 순환배치라는 미군의 인사 방식 중 하나가 이번에 한국에 오는 부대에 적용됐다는 점이 확인된다.
A씨는 필자에게 “한국에 배치되자마자 야간에 이르기까지 훈련을 전쟁 준비 수준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훈련은 휴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다음 주 일요일에 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필자의 미군부대 근무 및 훈련 참여 경험에 의하면 미군들은 휴일에는 거의 쉰다. 만일 연속해서 휴일까지 훈련하면 평일에 훈련 공휴일을 두어 쉰다. 그러나 3월 들어 주한미군의 병력과 정찰기는 휴일과 심야와 새벽에도 훈련과 활동을 한다. 반드시 전쟁을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을 대비해 전쟁을 바로 수행해도 되는 수준으로 실전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주한미군에 순환배치된 미 3사단은 2003년 3월 이라크전쟁 때 주공격 사단으로서 대담한 우회 접근으로 바그다드를 함락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당시 3사단이 바그다드로 진격하는 주변에는 이라크군 6개 군단, 15개 사단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이라크 군대는 해·공군과 합동작전을 벌이며 진격하는 3사단을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 장비와 작전에서의 현격한 차이 때문에 이라크 군대는 처음부터 무너져 내렸다. 바그다드를 개전 3주 만에 함락시킨, 전투 경험이 풍부한 3사단의 주력 기갑전투여단이 한국에순환배치된 것이 예사롭지가 않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NewsStand/3/all/20180317/89142255/1#csidxc1d3ec03261ec40b6dab8027850b881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지난해 11월 북한이 재진입 기술을 완성하려면 3~6개월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6개월의 시점은 올해 5월이다. 북한은 이 6개월의 기간 안에 사력을 다해 미사일을 완성해야 한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하라고 압박하면서 5월 데드라인에 맞춰 정상회담을 수락한 것이다. 북한이 가진 핵·미사일이 아직 완성품이 아니므로 그 가치는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29일 정부 성명을 통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것은 핵무기를 가지려는 국가가 그 목적을 달성할 능력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선언은 핵 무력의 기술적 완결 입구에서 내놓은 정치적 선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북한은 핵보유국 행보를 내딛고 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국가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면서 “그 어떤 핵 위협도 봉쇄 대응할 수 있으며 미국이 모험적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으로 됐다”고 자평했다.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오지 못한다”고 자신했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3월 10일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했다. 이 신문은 “분단의 주범인 미국이 일삼아온 북침전쟁 소동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는 평화 담판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배경에 대해 “그동안 트럼프는 조선에 대한 군사 행동의 가능성을 내비쳐왔으나 실제로는 무력 충돌을 피하고 핵보유국 조선과 대화를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하는 바람에 미국이 대화를 미룰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조선신보의 글은 하루 만에 전문이 삭제됐다.
뮌헨 신드롬
1939년 9월 29일 아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독일에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 지방을 넘겨준다는 내용을 담은 뮌헨협정문을 들고 왔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가 서명한 뮌헨협정문을 놓고 “영광스러운 평화”라고 치켜올렸다. 이에 대해 윈스턴 처칠은 “나치의 폭력 위협에 굴복한 것” “이리떼에게 작은 고기 한 덩어리를 던져주고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착각”이라고 했다.
독일은 뮌헨협정 체결 이듬해 3월 체코의 나머지를 병합했고 4월 폴란드를 침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체임벌린의 이 오판은 유화정책의 한계를 뜻하는 ‘뮌헨 신드롬’으로 불린다.
몇몇 안보 전문가는 이번 대북 특사단의 합의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뮌헨 신드롬을 상기시킨다. 독재자와의 협상엔 이런 위험이 늘 수반되기 때문이다. 체임벌린은 문서라도 들고 왔지만 이번 남북 합의엔 문서조차 없다. 북한 당국이나 언론 매체는 합의가 나온 지 상당한 기간이 지나도록 합의 내용에 대해 확인해주지 않았다. 한국은 김정은의 말만 믿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개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수락하도록 했다. 잘되면 노벨평화상감이다. 그러나 BBC의 말대로 잘못되면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도 더 깊은 벼랑 끝으로 몰릴 것이다. 필자는 이 점이 우려된다.
사실, 김정은의 급반전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북한은 과거 중요한 합의를 자주 어겼다. 1972년 체결된 7·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가 휴지조각이 됐다. 1991년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도 헌신짝처럼 취급됐다. 1994년 제1차 핵 위기를 타결한 제네바 합의도 파기됐다. 2005년 6자회담의 결실로 나온 9·19 공동성명도 이후의 핵실험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이후 2·13 합의와 10·3 합의는 구체적으로 핵시설을 표시하고 봉인하고 신고하고 폐기하고 검증하기로 했다. 2008년 6월 북한은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했다. 그러나 이런 합의와 폭파도 쇼로 끝났다.
북한은 원론에 합의한 뒤 각론에서 시비를 붙는 공산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협상 수법을 써왔다. 2012년 미국과 북한은 북한의 영유아를 지원하는 2·29합의를 도출했다. 이후 북한은 두 달도 안 돼 장거리미사일을 쐈다. 이렇게 북한과 체결한 모든 합의는 결국 무산됐다. 국제법상 조약의 성격을 갖는 정전(停戰)협정도 하루아침에 백지화하는 북한이다. 북한의 합의 파기 역사는 너무나 찬란하다. 이번 합의를 파기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특사단에 따르면, 김정은은 비핵화를 이야기하면서 ‘군사위협 해소’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것은 북한이 반복해 주장한 말이다. ‘어떻게 군사적 위협을 해소하고 체제의 안전을 보장할 것인가’에 대해 북한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대목이 지뢰밭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지금 북한은 내부 사정상 핵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북한은 2012년 개정헌법에서 ‘핵보유국’이라 칭했고, 2013년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에 대한 법’이라는 이른바 ‘핵보유법’을 제정했다. 북한 주민들 뇌리에 박히도록 핵 보유를 선전해왔는데, 갑자기 핵을 버리겠다고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 매체들은 정상회담 합의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핵 무력은 정의의 보검” “100년이 지나도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유화책은 늘 시간 벌기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번에도 그랬을 정황이 있다. 지난해 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2대 전략 방향이 채택됐다. ‘핵보유를 어떻게 기정사실화하느냐’ ‘제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라는 것이었다. 제재를 무력화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 평화 국면으로 전환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어려울 때마다 한국을 이용했다. 1990년대에 소련이 붕괴해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태도를 바꿔 남북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했다. 이후 고난의 행군을 무사히 넘겼다. 현재까지 유엔 안보리가 통과시킨 대북제재 결의안이 11개에 달한다. 무지막지하게 포괄적이고 광범위하다. 이 제재가 북한 목에 턱턱 차올라서 북한은 궁지에 몰린 것으로 보인다.
“3사단 소속으로 한국 왔다”
2월 16일 동중국해에서 북한 선적 유조선과 소형 선박이 유류 밀거래를 하는 장면. [일본 방위성]
이런 점에 비춰보면, 특사단의 발표도 중요하지만 북한이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핵 폐기 행동을 보일 때 겨우 믿을 정도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수용했음에도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3월 9일 “미국은 북한에 최대 압박을 이어갈 것이고, 북한이 비핵화 의지와 일치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회담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현재 북한과 협상 단계에 있지 않다”며 “미국은 북한이 약속한 사항을 지킨다는 전제하에 북한의 대화 요청에 응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예정해놓았다 하더라도 미국의 대북 압박은 지속되고 있다. 전쟁도 불사하는 징후가 이완되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 2사단에 근무하다가 지난해 여름에 미국 본토로 전속 간 미군 부사관인 A씨는 1년도 안 된 지난 3월 첫째 주 한국으로 돌아왔다. ‘신동아’ 3월호에 ‘이번엔 가족을 동반하지 못하고 혼자 한국에 오게 됐다’는 그 A씨다. 필자는 최근 A씨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는 “미 2사단이 아니고 3사단 소속으로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필자가 확인해보니, 미 육군 3사단 소속 부대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한국에 온 것은 사실이다. 미국 조지아주의 포트 스튜어트 기지에 주둔한 미 육군 제3사단 제1여단이 9개월간 한국에 순환배치된 것이다. 이는 미국 AP가 1월 13일 미국 조지아주의 미 육군 탱크여단이 한국에 순환 배치된다고 보도한 점과도 부합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한미군 하면 미 2사단을 떠올리는데, 지상전을 주로 맡는 3사단이 한국에 온 것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통상 9개월 미만으로 순환 배치되는 부대(Rotation Unit)는 가족 동반이 금지된다. 그래서 주한미군인 A씨는 이번에 가족 동반 없이 혼자 한국에 왔다. 신규 배치 주한미군 가족 동반 금지 논란과 관련해, 9개월 미만 순환배치라는 미군의 인사 방식 중 하나가 이번에 한국에 오는 부대에 적용됐다는 점이 확인된다.
A씨는 필자에게 “한국에 배치되자마자 야간에 이르기까지 훈련을 전쟁 준비 수준으로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훈련은 휴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다음 주 일요일에 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필자의 미군부대 근무 및 훈련 참여 경험에 의하면 미군들은 휴일에는 거의 쉰다. 만일 연속해서 휴일까지 훈련하면 평일에 훈련 공휴일을 두어 쉰다. 그러나 3월 들어 주한미군의 병력과 정찰기는 휴일과 심야와 새벽에도 훈련과 활동을 한다. 반드시 전쟁을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을 대비해 전쟁을 바로 수행해도 되는 수준으로 실전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주한미군에 순환배치된 미 3사단은 2003년 3월 이라크전쟁 때 주공격 사단으로서 대담한 우회 접근으로 바그다드를 함락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당시 3사단이 바그다드로 진격하는 주변에는 이라크군 6개 군단, 15개 사단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이라크 군대는 해·공군과 합동작전을 벌이며 진격하는 3사단을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 장비와 작전에서의 현격한 차이 때문에 이라크 군대는 처음부터 무너져 내렸다. 바그다드를 개전 3주 만에 함락시킨, 전투 경험이 풍부한 3사단의 주력 기갑전투여단이 한국에순환배치된 것이 예사롭지가 않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NewsStand/3/all/20180317/89142255/1#csidxc1d3ec03261ec40b6dab8027850b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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